개발이냐 보존이냐

[자연을 어떻게 대하는가?]

발리에서도 AIV를 열었다. 발리 그러면 TV에서 보는 멋진 휴양지일 줄 알고 다들 흥분해서 덴파사(Denpasar)공항에 도착하였다. 환영의 꽃 목도리를 공항에서 받을 때까지의 기쁨도 잠시, 우리가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한 학교는 바닷가에 위치하지 않고  발리의 내륙에 위치해 있음을 알았다. 바닷가까지 가는 데에는 거의 한 시간이 소요되는 곳이었다.

 

내심 실망이었다. 

 

게다가 숙소 곳곳에는 힌두교 신에게 바치는 꽃 제단(차낭사리: Canang Sari)을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설주 같은 데 만들어 둔 것이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못 보던 특징이었다.  발리라는 이름이 ‘Wali(바친다)’ 라는 어원에 바탕을 하고 있다니, 이 지역은 자신들의 종교에 열정을 가진 땅 일 것이다. 그러면서  차낭사리를 곳곳에 두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정령신앙(애니미즘)과 관계된 믿음을 가진 곳이겠거니 추측을 하였다.

길 목에 둔 차낭차리: 제단 모양의 틀 위에 꽃으로 된 장식과 신에게 바치는 음식을 향기 나는 풀 위에 얹는다

 

그러면서 페루의 민가에서 보았던 흥미로운 광경이 생각이 났다. 페루 쿠스코와 리마를 방문하면서 안내인이 우리를 민가로 데려갔다. 페루 원주민이 사는 민가에는 기니피그를 키우고 있었다. 주인의 방을 보여 주는 데 책상 위에 다양한 섬기는 것들이 놓여 있었다. 아래 사진에 보면 그 모습들이 나오는 데, 왼쪽 위에는 해골이 보인다. 조상 것이라고 한다.

 

페루 민가의 섬기는 것들, 왼쪽 위를 잘 보기 바랍니다.

 

조상을 섬기는 방식으로 돌아가신 분의 해골을 방안에 두는 것이 약간 그로테스크 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전통으로 여겼다. 제단에는 그 외에도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우리 일행은 ‘박카스’라고 한글로 된 병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런 남미 페루의 리마에서 한글로 된 박카스 빈 병을 만난 것이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주인에게 물었다. ‘지난 번 배 아플 때 먹었더니 낫게 되어서’ 섬기는 것이라고 한다.

 

자연물이든 무생물이든 자기에게 힘이 되는 것에 영혼이나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섬기는 전형적인 정령신앙 또는 애니미즘의 모습이 페루에서도 그리고 여기 발리에서도 느껴졌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으나, 페루나 여기 내륙 발리도 그렇게 발전된 곳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곳이다. 그러면서 왜 개발이 덜 된 나라나 지역들은 이런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정령 신앙이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정령 신앙은 생물, 무생물, 동물들에 영혼이 있거나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니 그런 것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자연에 도전하고 정복하는 태도를 지닌 기독교나 서양의 과학 체계적 접근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정복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으로 자연을 대하게 된다면 자연히 산업화나 개발을 통한 경제발전보다는 자연과의 조화내지 자연에의 순응을 추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개발을 억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정 지역이 신성한 지역으로 여겨진다면 개발을 반대하는 무너뜨리기 어려운 믿음이 있게 되고 이는 좋은 측면에서 자연보호나 환경보존을 가져 올 수 있으나, 생존을 위한 발전에서는 한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신사에 가 봐도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서 섬기는 대상들의 형상이나 내력을 들어보면 짐승이나 벼 같은 전형적인 정령 신앙의 모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내로라하는 선진국이고 발리나 페루는 그런 위치가 아니다. 물론 일본의 발전을 신토주의에만 둘 수는 없고 명치유신을 통한 근대화의 성공이라는 다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자연을 대하는 마음에 있어서 정령신앙은 경제 발전에 많은 부분 제한을 가져 올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자연을 보호하고 보존하면서 또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정복하고 다스리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 그곳에도 ICT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