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개발협력

외국에서 아플 때

by 모닝쁘미 2024. 11. 6.

워크숍을 열기로 한 학교가 위치한 지역이 발리이긴 하지만 마음속에 그리던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그런 발리와는 거리가 먼 내륙 지역이라 실망한 탓일까. 해외를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아플 때가 있다. 특히나 공식 행사가 있는 날은 난감하다. 발리에서 AIV를 마치는 날 아침이 그랬다.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비가 자주 왔지만 교사들은 개회식 후에 예정대로 프로그램을 착착 진행시켰다. 그해 우리가 계획한 것은 문제중심학습(PBL) 방법을 적용하여 교수 학습 자료를 개발하는 것을 연습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어떤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할지 제안해보라고 했을 때, 그들은 ‘Life skills for 21st century' 라는 주제의 교육용 콘텐츠를 제작하자고 하였다. 번역하면 21세기 라이프 스킬쯤 되겠다.

“Life Skills are abilities for adaptive and positive behavior that enable individuals to deal effectively with the demands and challenges of everyday life”- WHO

 

WHO의 정의에 따르면 라이프 스킬은 인간 삶에서 마주치는 요구와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적응적이고 긍정적인 행동 능력을 의미한다. 삶을 살면서 만나는 어려움에서 문제 해결 능력이나 의사소통과 감정 관리 및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있다면 일상의 다양한 상황에서 훨씬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지역을 초월한 것도 있지만 많은 부분은 사회적 규범이나 지역사회의 기대에 영향을 받게 된다. 때문에 개인이 행복하고 지역사회의 바람직한 구성원으로 발전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되는 기술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주제를 이렇게 설정하자 살짝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프 스킬’이라는 단어를 구체화 시키는 것이 쉽지 않고, 자신들이 가르치는 과목과 관련하여 교수 학습용 자료를 만들자고 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한국 같으면 아마도 교과내용을 더 잘 가르치는 내용으로 하자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었다.

 

제안에 따라 큰 주제로 라이프 스킬을 정하고 세부 주제를 나누어 각 그룹별로 작업을 하는 형태로 PBL을 진행하기로 했다.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요소 기술 교육 중에 퍼블리셔(Publisher)를 이용하여 홈 페이지를 만드는 연습을 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교사들 중 많은 사람이 자기 ‘가족’을 중심으로 작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기가 근무하는 학교 중심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홈페이지 제작 연습에 주제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가족이 학교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가족의 유대감은 시대가 변화해도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가족의 힘이 쇠퇴하고 있다고 보는 글로벌 정서와 다르게 오히려 더 증가했다고 응답하는 인도네시아 성인의 비율이 아주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 예로 해마다 라마단 금식을 끝내고 나면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최소 이삼일에서 최대 일주일까지의 ‘르바란(Lebaran)’ 휴일을 보내는 데, 이 기간 동안 해마다 많게는 1억명이 넘게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에게 돌아가 휴일을 보낸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들이 라이프 스킬의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연습과정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내용이 ‘가족’과 연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프로젝트 발표를 하는 선생님들: 행복합니다.

 

전날 저녁을 비가 오고 난 후에 춥게 잔 탓인지, 목이 잠기는 감기가 찾아왔다. 어쩌나 오늘 내가 나가야 마무리를 하는 데. 그룹 발표도 보고 코멘트도 하고 종료식도 해야 하는 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가족, 이런 때 가족이 더 보고 싶으나, 할 일은 해야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는 시간이다.

개회식의 전통 춤과 쏟아지던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