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구하다]
우리는 미국을 경유하여 지친 몸을 이끌고 산토도밍고 공항에 도착하였다. 시차가 13시간이다. 오후 3시경만 되면 머리가 깨지는 고통과 졸음이 쏟아진다. 다음 날부터 바로 작업을 해야 했으므로 서둘러 호텔에 짐을 풀었다. 마중을 나온 밀시아데스는 훤칠한 키의 남자다. 그리고 또 한명의 남자 A가 눈에 들어 왔다.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은 힘이 들었다.
올라, 부에노스 디아스.
밀시아데스는 우리의 업무를 위하여 시종 우리와 함께 한다. 일은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교육부 장관과의 면담을 통하여 우리가 양국의 MOU에 따라 요청한 컨설팅을 위해 왔으며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알린다. 컨설팅 절차에 따라 학교나 기관을 방문하고 준비해 간 설문지를 주고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주된 과업이었다. 교육정보화 담당자 등과 대화가 어려운 때는 A가 나서고 밀시아데스가 돕는다.
수도 산토도밍고 앞바다는 카리브 해에 속해 있다. 아름다운 청록색 바다와 따뜻한 기후가 좋다. 카리브 해의 특징인 생동감 넘치는 파란색과 녹색 색조는 시차를 이기기에 충분한 여유를 준다. 게다가 카리브의 모형 해적선을 올라 포즈를 취하면 조니 뎁이 된 것처럼 낭만이 그만이다.
이곳의 기온은 살기에 정말 좋다. 저녁이 길다. 시원해진 광장으로 젊음이 쏟아져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밤이 즐겁다. 산토도밍고는 열대 기후이지만 낯 기온은 일반적으로 30도 정도, 저녁 기온은 20도 언저리다. 날씨로 말하자면 살고 싶은 동네다. 피냐꼴라다 한 모금이면 가슴이 뜨겁다.
[저녁 마켓의 댄서들]
일은 일이다.
계획된 대로 일이 진행되자 과제책임자와 일행은 만족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한 가지 숙제가 남았다.
‘먼 나라로 갈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된 그 일을 아직 못했기 때문이다. 이십여 시간을 날아 올 정도면 먼 나라이다. 그렇지만 컨설팅 과제를 하라고만 여기에 온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구인가? 누구를 만나야 하는 것일까?
밀시아데스인가? 그는 친절하고 말이 많았다. 개인적인 일을 말해야 했으므로 어렵게 어떻게 지내는 지 조용히 물어 보았을 때, 자신은 최근에 이혼을 했노라고 했다. 마음이 힘들겠구나. 그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나? 생각은 많았지만 그와는 공식적인 미팅 시간에만 만나니 특별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어느 저녁, 우리는 물고기를 중심 요리로 서빙을 하는 식당에 모였다. A도 거기에 있었다. 저녁을 들면서 나는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 했다. 어쩔 수 없이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따라 나왔다. 프로젝트 때문에 만났지만 종교 문제를 이야기 할 만큼 친숙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밤의 분위기는 다들 경청하는 느낌이었다. 여행은 사람을 관대하게 한다. 어차피 남는 시간에 듣는 흘려들으면 될 부담 없는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면 된다.
나 역시 아무데서나 섣부르게 종교 이야기를 꺼내는 그렇게 경우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경청해 주는 일행이 고마울 뿐이다. 그러면서 A를 보자니 무언가 이야기를 더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식사 자리가 파하고 A에게 호텔로 가서 이야기를 더 하자고 권했다.
A에게 준비해간 4 Spiritual Laws를 가지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의 비참함과 어떻게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지를 설명했다. 그 길은 오직 예수를 마음에 받아들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자. 만난 지 10일도 안된 사람에게 그런 말을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쉬운 일이겠는가? 어쨌든 A는 들었다. 예수를 마음에 받아들이겠는가 하고 물었을 때 계속해서 쭈뼛거렸다. 하고 싶은 데 하지 못하는 무엇이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일까? 마음속에 무언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누구를 미워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일이 있나요?
..........
..........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에 그는 다시 한 번 쭈뼛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너무 개인적인 것이라 상세히 옮기기는 그렇지만 요지는 그의 친구 B와 C와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B와 C가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나라로 가 있고, 이들에게 한 번 본때를 보여 줄까 하고 몇 달을 고민 중이라는 것이었다.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그 사연도 사연이지만 그들 때문에 마음속에서 번민하고 있는 A가 안타까웠다.
용서... 해답은 용서였지만,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A에게 용서를 강요할 수 있겠는가?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침묵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자 한 희생을 조용히 말했다.
어렵지만, 그것을 생각하고 예수를 받아들이시고 용서해야 당신이 삽니다.
더 시간이 흐른 뒤에 A는 긴 한 숨을 내 쉬면서 어렵게 그러마고 말했다. 우리는 같이 기도를 했다. 자기도 어릴 적에는 교회에 다녔었는데 크면서 안다닌다는 말을 하면서, 이제 다시 교회에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먼 나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나는 공식적인 일 외에 한 가지 숙제를 안게 되었었다. 그리고 A의 일을 겪으면서 만일 A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쩌면 세 사람을 잃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놀랐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누군가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이런 경우도 있는 것이구나. 그리고 이것은 공적인 일로는 다룰 수 없는 또 다른 중요한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해외를 왔다 갔다 하지만 한 꺼풀 속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사연들에 예수가 필요한 것이구나. 왜냐하면 그 예수는 살리는 분이시므로.
그날 저녁, 잠들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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