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개발원조위원회(DAC) 멤버이며 2023년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약 31억 달러가 될 정도로 성장했다. 1인당 ODA 규모는 그 나라의 년간 ODA 지출을 국민총소득(GNI)으로 나누어 계산한다. 2023년에는 0.18인데 1인당 60달러를 개발원조로 지출한 셈이다. 대외 원조비용이 늘어난 대부분의 ODA 사업을 주도하는 국제협력단(KOICA)은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일하는 방식도 매우 고도화 되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2001년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인도네시아 교육부와 한국 교육부간의 채널을 통하여 사업을 시행해야 하므로 두 시어머니를 둔 셈이다. 두 시모를 만족시키면서 어떤 형태로 사업을 진행시킬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었다. 정부 기관이 관여하는 국제적 일에 참여한 경험이 거의 없는 우리의 역량에만 의지하는 사업구조가 되었다. 그만큼 부담도 컸다. 국제원조의 이유가 다양하고, 대부분의 원조사업에 수혜국은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기는 했으나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국제 사업에 대한 경험이 없었지만 어떤 책임감이 우리를 긴장시켰다. 인도네시아의 사업지는 수도 자카르타와 경주 같은 분위기가 나는 족자카르타 두 군 데였다. 동전 던지기 결과 나는 자카르타에서, E교수는 족자카르타에서 인터넷 봉사단을 운영하기로 결정됐다.
현지 사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먼저 사전 답사를 갔다. 인천공항에서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하고 난 뒤, 동행하는 C대의 D교수는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 지 물었다. 예상했듯이 그도 역시 나와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운명의 손짓을 느꼈다.
사전 답사를 위해 방문한 자카르타의 새벽, 낭랑한 아잔(Azan) 소리가 새벽잠을 설치게 했다. 새벽 4시만 되면 어김없이 호텔 부근의 모스크에서 목청 좋은 남자가 아잔을 읊었다. 녹음된 것인 지, 낭랑한 음조는 지친 몸과 새벽잠 많은 젊음을 괴롭혔다.
베개를 뒤척이며 듣는 아잔에서 슬픔이 묻어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잔은 이슬람의 기도하라는 호출이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하루에 5번 기도를 하도록 요청하는 데, 특히 Fajr라고 불리는 새벽 호출은 종종 가장 엄숙하고 영적인 호출로 간주된다.
세상이 아직 어둡고 조용할 때, 그 이른 시간은 침묵의 시간이다. 젊었기에 새벽잠은 꿀맛이었지만 비행 여정으로 지친 마음에 확성기를 통해 방송되어 강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이따금씩 이슬람권을 여행하면서 들려오는 먼 곳의 아잔 소리는 쓸쓸한 가을날의 아스라한 맛을 주었지만, 자카르카의 숙소에서 듣는 소리는 아! 내가 외국에 와 있구나 하는 이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새벽은 낯과 밤이 바뀌는 시간이다. 밤과 낯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 무의미하지만, 이 신비로운 시간에 강력하고 신성한 부름을 듣는 것은 경외감이나 초자연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무슬림들의 문화를 모르는 사람에게 무언가 금을 긋고 선을 넘지 말라는 선포처럼 여겨졌다.
새벽에 듣는 아잔이 주는 으스스하고 무언지 모르는 불안한 느낌을 이기고 싶었다. 비록 잠이 덜 깨었지만 아잔이 시작되기 전에 일어나 먼저 자신의 운명을 향하여 깨어 있기로 하였다. 기도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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