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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

시작.. 운명인가?

by 모닝쁘미 2024. 10. 4.

총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때는 6월 오전이었다. 그는 지금 대학교육사회협의회(대사협)에서 국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이 대학에서 당신이 가장 적임자로 보인다.”며 팩스로 받은 문서를 건넸다. 그리고 당일, 서울에서 관련자 회의가 있으니 가보라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기차를 타고 총장이 건넨 팩스 자료를 보았다. 청년 인터넷봉사단(Youth Internet Volunteer: YIV) 관련이었다. 문득, 작년 어느 날의 9시 저녁 뉴스가 기억났다.

 

2000년 3월 서울에서 열린 APEC 서울 포럼 중에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연설했다. [지식 및 정보의 격차는 국가 간의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켜 갈등과 대립을 가져올 수 있다. 생산적 복지 개념을 역내 국가 간에 적용, APEC의 ‘사이버 교육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정보화에 쳐진 나라와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이 쉽게 인터넷을 활용하고 직업훈련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이와 관련 컴퓨터·초고속정보통신망 등 정보 인프라가 아·태지역의 모든 곳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며 청년 인터넷봉사단이 구성돼 정보화 낙후국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활동이 이뤄져야 한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2000.04.03. 국정신문. 2000년 3월 31일)

 

그 연설이 포함된 APEC 관련 기사가 저녁 TV 뉴스로 나왔다. 뉴스를 보면서 나는 문득 저 일은 나의 일이 될 것이다.’라는 뜬금없는 느낌을 가졌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 내 손에는 청년 인터넷 봉사단을 실행시키기 위한 회의 알림 공문이 들어 온 것이다.

 

마음이 떨렸다. 그 동안은 자기가 선택한 길을 달려왔지만 이렇게 선택당하는길은 처음이었다. 사전적인 의미로 운명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해 이미 정해져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의미한다. 어떤 절대적인 존재나 무엇에 의하여 이미 정해진 길을 가야 하는 것, 그것이 운명이다.

 

기차 안에서 운명은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네가 9TV 뉴스를 봤고, 내가 말했지, 너는 이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제 1년이 지나서 너는 이 회의에 참여하게 되는 거야.’

 

운명을 만났다는 확신이 들면 떨릴까?

 

회의에서 사업지가 인도네시아로 정해졌다.

 

2001년에 시작된 이 사업은 김대중 대통령이 제안한 내용을 실현시키고자 진행되었다. 교육부는 2001년에는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각 2개 대학씩, 4개 대학의 학부생들을 통하여 컴퓨터교실을 구축해 주고 인터넷을 가르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청년 인터넷봉사단은 케네디 대통령이 평화봉사단을 전 세계로 보냈던 것을 본떠서 착안한 APEC 사업이었다. 평화봉사단이 아날로그적인 접근이라면, 청년 인터넷봉사단은 디지털 방식이라고나 할까.

 

이 과제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은 A대의 B교수와 C대의 D교수로 모두 교육공학을 전공한 학자들이었다. IT를 교육에 이용하는 정책은 어찌된 일인지 대부분 교육공학 전공자들의 몫이었다. 컴퓨터교육이 여러 대학에 개설되어 있었으나, 교육부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주로 교육공학자들이었고 나와는 특별한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전혀 모르는 세계로 붙잡히듯나갔다.

 

한국은 이제 DAC 회원국이다